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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학

커피의 역사 - 커피의 기원

by 커피투성이 2022. 11. 3.

 1장 커피의 역사

 

1. 커피의 기원

 일반적인 커피 책에서는 커피의 시작으로 에티오피아의 양치기 소년 칼디의 이야기라든가 예멘의 이슬람 수도승 오마르의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커피에 관한 전설을 모은 이탈리아의 언어학자 나이로니(Naironi, 1613~1707)에 의해 1661년에 소개된 것이다. 그러나 모두 커피 과실이 이용된 것이었고, 이슬람교와의 관계를 강조한 전설로 이들을 모두 오늘날 배전 콩을 사용하는 커피의 기원이라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커피가 처음으로 문헌에 나타난 것은 페르시아의 의사 라제스(Rhazes 또는 Razi, 850~922)의 저서이다. 그는 페르시아, 이집트, 인도, 유럽의 의학을 종합한 서적인 의학집성(하위) 가운데서 에티오피아 및 예멘에 자생하는 본(Bun)과 그 추출액 반캄(Bunchum)을 의약의 재료로써 서술하고 있다. 이슬람의 과학자 아비센나(Avicenna, 908~1037)도 저서 의학법전(카논)에서 의약으로 써 본과 반캄을 거론하고 있다. 전자는 13세기에, 후자는 12세기에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에서는 17세기까지 의학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Kaldi and the Dancing Goats
Kaldi and the Dancing Goats

 엘리스(J, Ellis)1774년에 저술한 커피의 역사적 고찰에서 15세기의 니에하벤딩이 쓴 아라비아어의 고문서를 인용해서 커피가 아비시니아에서 예전부터 식용으로 공급됐다고 서술하고 있다. 사실 아비시니아에서는 예전부터 커피의 건조 과실을 씹어 먹기도 하고 그 분쇄물을 유지와 섞어서 한약처럼 만들어 여행 다닐 때 비상식으로 하기도 하고, 혹은 과육을 이용하여 술을 제조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中尾가 지적하고 있듯이 아비시니아고원은 기원전 5~4000년경에 만들어진 사반나 농경문화 발상지의 하나로 테흐, 시코쿠비에, 솔감 등의 잡곡이나 콩, 깨 등의 재배가 행해지고 있다. 따라서 야생의 커피 과실의 이용은 농업을 행하지 않는 가라 족 등의 목축민에 의한 것일 것이다. 아랍의 대여행가 바토우타(Ibn Battuta, 1304~1369)1325~1353년의 약 30년간에 메카(Mecca)를 비롯한 중동지역, 인도, 중국, 아프리카, 이베리아반도를 여행하고 그 여행기 도시의 불사의와 여행의 경이를 본 자의 선물가운데에서 당시의 이슬람 사회의 모양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지만 커피의 기술은 없다. 같은 시기에 중국의 가지를 여행하고 각지의 산물을 바친 마르코플로(Marco Polo, 1254~1324)동방견문록에도 차의 기록이 없기 때문에 바토우타의 여행기에 기록이 없는 것을 가지고 커피가 14세기에는 아직 보급되지 않았던 것으로 판정하는 것은 어떨까 하고 생각되지만, 적어도 메카에서는 아직 눈에 두드러질 정도로 커피가 음용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16세기 중반 즈음부터 지중해 동해안의 레바토 지방을 여행한 유럽인, 예를 들면 독일인 L. Rauwolf 등의 여행기에 현지의 사람들이 태운 본(Bun)에서 제조한 '카와'라 불리어지는 검은 액체를 식용으로 하는 것이 소개되어, 유럽인들에게 커피가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북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영역에서 Padva대학의 식물원 원장이었던 알피니는 카이로의 터키 사람의 정원에서 커피나무를 보고 이 나무의 브나라고 부르는 과실이 카베의 원료인 것을 알고 그 나무의 사진을 1592년에 발표한 이집트의 식물중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들 사실에서 중국과 가까운 동부지역에 있어서 배전 콩을 이용한 커피 음용의 시작은 14세기 이후라고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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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gley는 그의 책 커피1장 커피의 역사중에서 14~17세기 사이에 커피에 관해서 아라비아어로 적혀진 몇몇 고문서의 번역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들에 따르면 커피의 음용은 예멘에서 14세기에 소개되었고, 15세기에는 아라비아의 이슬람 사원으로 전해졌다가 16세기에는 이집트에 달하고 있다. 단지 초기에 커피가 생콩을 사용했을지 곡(:하스크, 햇볕에 건조한 과실)을 이용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지만 아마도 처음에는 곡()을 이용했다고 생각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술탄 커피는 터키 술탄의 할렘에서 선호한 음료로써 이것은 (카페인을 포함한다)을 갈아서 냄비에 넣어 숯불로 가볍게 볶은 후, 끓는 물에 넣어 삶아낸 것으로 황갈색의 쓴맛이 없는 섬세한 풍미를 가진 액체이다. 필요에 따라 계피나 생강, 설탕 등을 첨가하여 음용한다.

 NHK昭和 63년에 텔레비전 방영한 바다의 실크로드(3), 해피 아라비아중에서 취재반이 커피 농가에서 마신 것이 이 술탄 커피이다. 커피의 곡은 커피 재배지가 아니면 입수할 수 없고, 양도 적어서 현지에 사람들은 여름은 술탄 커피를 겨울에는 배전 콩의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아마도 14~15세기 초의 커피는 둘 다 음용되었을 것이다.

 Wrigley가 소개한 아라비아어의 고문서에서 최고로 유명한 것이 압달카딜에 의해 1587~1588년에 쓰인 커피의 정당성에 관한 순백의 주장이란 사진 책으로 이슬람과 백과전집보다도 빠른 커피 문헌으로 인정되고 있다. 루이 14, 오스만터키에 주재하던 프랑스대사 드노이텔이 사진 책을 이스탄불에서 가지고 돌아와 처음에는 왕립도서관에 소장되었지만, 이후에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었다. 이 사진 책은 아라비아어 학자인 Antoine Galland에 의해 이슬람 특유의 語體로 번역되어, 1699년에 커피 유래기라는 서적으로 출판되었다. 그 후 Antoine Isaac Silvestre de Saey에 의하여 다시 번역되어 1826년에 출판되었다. 이와 같은 사진 책들이 마드리드교회의 에스코리알 궁의 도서관과 알렉산드리아에 존재한다고 알려졌다. 사진 책의 개요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유명한 이슬람의 법률학자인 아덴관장인 게마레딘은 아비시니아를 여행하면서 현지 사람들이 배전한 커피를 약용으로 음용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아덴에 돌아온 후에 건강이 나빠졌을 때 이것을 생각해내어 음용하여 건강을 회복하였으며 기분마저 상당히 좋아졌다. 그래서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는 수도자들에게 커피를 음용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것이 커피의 평가를 높이게 되어 순식간에 아덴 사람들에게 전파되었다. 그때까지 마시던 카트도 마시지 않게 되기에 이르렀다.

 

 이 커피 음용은 빠르게 메카로 전해져 여기에서 커피 최초의 수난인 메카 사건이 일어났다. 메카 사건에 대해서는 UkersAll about coffee1권의 역사 기술에 따라서 경과를 추적하기로 하자. 메카에서의 초기 커피는 모스크에서의 신성한 예식의 하나로써 예배와 연결되어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미 신앙과는 관계없이 커피를 즐기게 되었고, 커피집에 모여서 음악을 듣거나 정치를 논하거나 하여 열성 이슬람 신자의 노여움을 사기도 하였다. 1511년 엄격한 이슬람 신자였던 메카의 총독 카이루베이는 이 사태에 화가 나서 커피는 코란에서 금지하는 알코올음료와 같이 사람들을 흥분시켜 타락시킨다고 하여 우선 모스크에서의 커피 음용을 금지했다. 다음에 그는 재판관, 법률학자, 의사, 장로들로 구성한 회의를 소집해서 커피집의 폐쇄 건을 결정했다. 이 회의에서 의사들이 아비센나들의 반캄(Bunchum)의 약효를 인용하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 토론의 결과 총독은 커피집의 폐쇄와 커피 판매금지의 법령을 발표하는 것과 함께, 다음 대책을 카이로의 술탄에게 보고했다.

 한편 카이로에는 이미 1510년에 이슬람 수도승에 의해 커피가 전해져 사람들 사이에 보급되어 있었고, 당시 이집트의 술탄, 칸사우흐는 의사의 권유도 있어서 커피를 애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방침을 반영하여 메카 총독의 권고를 부당하다고 취소시키기를 명하고 총독과 회의에서 커피 금지를 찬성한 사람들을 엄벌에 처했다. 이상이 카딜의 사진 책의 개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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